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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고후서 12:14~21, 시 73:1~28)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19-09-14 13:04     조회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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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믿음이 자라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살리신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영혼을 소생시키셨고 그 살리신 영이 거하시는 영으로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우리를 자라나게 하십니다. 믿음은 거하시는 영이 내 안에서 계속해서 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서 2:16~17) 장성한 분량의 믿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떠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욕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뱀이 여자에게 한 이야기를 듣고 먹으려하고 눈이 밝아지려고 하는 그 자체가 육신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선악과를 먹을 만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안목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육신의 정욕이 들어와서 실체가, 본체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고 망상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스스로 만든 거짓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자신만의 행복과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절) 여자가 열매를 먹고 남편에게 자랑했습니다. 유대인의 조크인데 여자가 주는 것은 함부로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4절) 음녀가 적그리스도인데 아름다움과 능력과 권세를 가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자는 ‘요한1서 2장 1절 나의 자녀들아, 7절 사랑하는 자들아, 12절 자녀들아, 18절 아이들아’ 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위해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사도바울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세 가지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첫 번째는 15절에 보면 ‘내가 여러분을 더 사랑하는데 여러분은 나를 덜 사랑하려고 합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지극히 크다고 하는 사도들은 재물을 요구하고 그것이 곧 자신의 능력과 권위라고 자랑하고 있는 반면에 사도바울은 재물 보다 그들의 영혼을 더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관심이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영혼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이 영혼에 관심이 있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 12:14) 자식은 쓰는 자이고 부모는 모으는 자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생각하지 않고 부모는 자식을 생각합니다. 세상이 순리가 아니고 역리이기 때문에 미친 부모, 이상한 자식들이 생겨나지만 결국 자식은 자식을 통해 부모를 이해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라는 질문입니다. 이득을 취한다는 말은 착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교활한 자가 되어서 그들을 속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교활하다는 말은 재물을 직접 착취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를 통해서 착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소문에 대해서 바울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짐이 된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라는 질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동일한 성령, 동일한 보조’로 행했다고 확신을 가지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디도와 바울은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는 무한한 신뢰가 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이렇게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19절에서 결론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후 12:19)


자식 걱정


사도바울은 부모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네 가지의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이 두려움은 물가에 내놓은 것 같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걱정입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고후 12:20)

첫 번째는 서로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기대에 못 미칠까 또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합니다.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 12:20)

두 번째는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비방, 수군거림, 거만함, 혼란이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자녀들이 관계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고후 12:21)

세 번째는 자신이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고 자녀로 인해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2:21)

네 번째는 부정함, 음란함, 방탕한 생활,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자신이 슬퍼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고 당당한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혹시 부끄러운 자녀가 되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자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장성한 분량까지 믿음이 자라나서 부모의 마음으로 변명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Before God In Christ'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 12:19)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시편 73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인의 번영을 말합니다.
 
시편 73편에서 악인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고난과 재앙도 없고, 소득은 마음의 소원 보다 많으며,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납니다. 7절에 보면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라고 하는데 이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살이 찐 것이 부의 상징이었는데 너무 살이 쪄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악인은 너무 말라서 눈이 퀭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편의 악인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을 때도 잘 죽었습니다. 보통 악인은 죽을 때는 고통스러워해야 하는데 죽을 때도 고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이 강건했습니다. 이게 정말일까요? 아닙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눈으로 보니 악인이 행복해 보일 뿐입니다. 원래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다만 나는 불행하고 악인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의인인 나는 불행합니다.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고, 그렇다고 대놓고 악행을 행할 수도 없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고통스럽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는 의인의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벗어나야 알 수 있는 복입니다. 그 복을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은 사라지고 안목은 변하고 이생도 지나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부터 보이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본체이고 보이는 것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잘 태어나고 잘 먹고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고 머리 둘 곳이 없었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저주 아래서 태어나셨고 저주 아래서 살았고 저주 아래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의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아버지의 뜻과 소원과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함으로 단일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복종과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걷게 하셨고 그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모든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악인의 번영은 일장춘몽(一場春夢)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의인은 세상을 등지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의인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악인의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 악인은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의 행복을 부러워하면 세상에서 더 불행해집니다. 육신에 소망이 없고, 육신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망상이 사라지고 더 이상 악인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이제 악인의 자랑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이고 하나님의 옷자락이고 하나님의 ‘참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림자가 아닌 본질을, 본체를 깨닫습니다. 본체를 깨달은 사람만이 본성을 회복합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과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 73:20)

악인의 삶은 일장춘몽과 같이 한 날의 꿈입니다. 주님이 일어나시면 그들의 삶은 갑자기 황폐하게 되고 놀랄 정도로 전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의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소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그림자이고 꿈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은 비본질적인 것에서 본질로 가는 것이고 비진리에서 떠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이 생명의 본질이고 진리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로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종말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야 생명의 족보가 생기고 그 족보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면 생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부모가 되는 과정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생명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아버지가 됩니다.

세 번째 사도바울이 ‘재물이 아니고 너희 영혼이니라’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구할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이 있어야지 이득을 취하지 않고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한 생명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성소로 들어가고 그 성소에서 하나님아버지를 만나고 만난 하나님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들을 위해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슬퍼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5, 마침
고후 12:14~21, 시 73:1~28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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