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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설교) 서로 문안하라 (고후 13:11-13, 창 47:1-10)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19-09-14 13:10     조회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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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창조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분입니다. 최고의 사랑과 최대의 은혜와 최선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구원하고 계시고 구원을 마침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복의 역사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복은 세 가지 단어로 설명이 되는데 ‘바라크’와 ‘아쉐르’와 ‘야타브’입니다.
‘바라크’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말씀에 세 번 나옵니다.

 ‘(물고기 및 모든 생물, 새들)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창 1:22)‘하나님이 그들(사람-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바라크라는 단어는 ‘무릎을 꿇다/굴복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과 운동력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는 능력의 복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함이 강함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이 바라크의 언약 때문입니다. 창조의 역사 안에서의 특별한 복은 ‘시간의 복’을 말합니다. 안식할 수 있는 시간의 복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생명이 잠시 머물고 숨을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셔서 그 안에서 생명이 쉬고 위로 받고 충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 하며’(시 1:1)

‘아쉐르’라는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것을 말합니다. 새김질하는 복은 바르게 따르고 바르게 서있고 바르게 앉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복은 똑바로 따라가고 있고 경계선을 지키고 서 있고 앉아 있을 곳에 제대로 앉아있는 모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TOP라는 말이 있습니다. T는 Time, O는 Occasion P는 Place입니다. 시간과 경우와 장소에 따라서 옷과 행동과 말이 달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쉐르의 복은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서고 앉아있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시온의 대로를 걸어가고 하나님의 집에 머물고 주님과 앉아서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야타브)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야타브’라는 단어는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아버지가 공급해 주시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의미는 히브리어 ‘토브’,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의미로 ‘좋다, 기쁘다, 즐겁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Happiness입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복과 인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분별력의 복과 하루하루 평안할 수 있는 자족의 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축복기도


사도 바울이 드디어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 인사를 축복하는 말로 시작해서 축복의 기도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한국교회가 예배 마지막 순서에 하는 축복기도의 원형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3절밖에 안되지만 구약의 복의 개념, 3가지의 단어의 복의 의미를 알고 다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쁨의 복(야타브)이 있으라. 온전하게 되는 복(아쉐르)이 있으며 위로의 복(바라크)을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는 복(아쉐르)과 평안한 복(바라크)이 있을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는 복(바라크)이 있으리라. 거룩한 복(바라크)을 서로 말하고 서로 문안하는 복(아쉐르)을 누리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는 복(아쉐르)을 전하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바라크)과 하나님의 사랑의 복(아쉐르)과 성령의 교통하심의 복(야타브)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짧은 구절 안에서 12 가지의 복을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도 바울의 변명과 권면과 명령들의 목적은 고린도교회가 잘 세워지고 강해져서 하나님의 복을 선포 해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갑’을 향한 ‘을’의 축복


성경에서 문안한다는 의미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1절부터 10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과 그 형제들이 어떻게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셉이 바로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이 고센 땅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합니다. 그리고 5형제를 선택해서 바로에게 소개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바로에게 하소연합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다’, ‘양 떼를 칠 곳이 없다’, ‘바로를 잘 섬길 테니 비옥한 고센 땅에 살게 해 달라’ 라는 등의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선심 쓰듯 너그럽게 그들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애굽의 땅에서 거주하고 고센 땅을 허락하겠다’, ‘형제 중에 능력 있는 자들은 내 가축도 관리하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7절과 10절 아무것도 없어서 빌어먹으러 온 야곱이 바로를 축복한다는 말을 합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만수무강을 빌었다’고 표현 했는데 정중하게 격식을 갖춰서 인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때 ‘바라크’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바로에게 선포하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 중에는 야곱이 바로에게 하나님을 말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복입니다.

바로를 만난 야곱은 자신의 인생의 처지를 ‘나그네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나그네의 길은 항상 안정감이 떨어지는 길입니다.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길이 나그네 길입니다. 두려움으로 살았던 자신의 인생길에 대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175세, 이삭이 180세로 자신의 조상의 연륜에 비하면 자신의 130년 인생은 어린아이와 같고 어리석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지만 130년의 인생이 거칠고 험한 인생의 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반면에 바로는 야곱과 비교하면 다른 상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문명과 과학을 자랑하는 나라였고 그 나라의 주인이 바로(파라오)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것이 차고 넘쳐서 남에게 관리를 맡길 수밖에 없는 큰 부자, 주인(갑)입니다. 세상 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도 부러워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갑중에서도 최고의 갑, 슈퍼 갑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7장 7절 말씀을 보면 축복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슈퍼 갑인 바로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인 야곱을 축복하는 것이 복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이 보는 것이 다릅니다.


완성된 복


하나님의 사람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복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땅의 모든 족속, 거기에는 슈퍼 갑인 바로도 포함됩니다. 그도 나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입니다. 동서남북의 땅의 사람들은 어느 곳에 가야지만 복된 자리이고 복된 시간이, 복된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늘의 사람인 내가 복의 주인, 복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또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이삭의 복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 26:24)

‘아브라함의 복이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 아들, 이삭에게도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야곱에게 주어진 복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 35:9~12)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이긴자’/‘하나님이 이긴다’라는 이름, 이스라엘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는 복을 주십니다. 본인은 나그네이지만 하나님나라의 왕입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후손들의 조상이기 때문에 왕의 조상, 왕의 왕이 될 것입니다.
 
험악한 인생의 굴곡을 가지고 있는 나그네 야곱은 아브라함의 원복, 이삭의 계대의 복,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나라의 복을 가지고 바로를 향해 ‘바라크’의 축복을 합니다.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그 근원의 복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비록 사도의 진실을 위해 변명해야 하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해서 빈약한 사도로 의심받고 있는 사도바울이지만 자신이 예수그리스도가 주신 완성된 복, 최고의 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은 완성된 복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 바 되는 복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단일을 이루는 위대한 복을 말합니다. 이 복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복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오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신령한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고 우리의 믿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원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육신의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이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축복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복을 기억나게 하는 인생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서로 문안하라’는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원복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보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모든 교회의 기준은 초대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성경공부파인 아볼로 파, 정통제자파인 게바 파, 원조파인 그리스도 파, 성령의 바울 파 까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고 각각 은사들이 넘쳐나서 교회가 질서가 없는 노가다(틀이 없는)판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비도덕적이고 문란한 생활을 보여 주기도 하고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탐해서 세상 법정으로 비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13장 11절입니다. 한마디로 너무나 어린아이 같은 신앙으로 사랑 안에서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결론은 12장 10절의 말씀입니다. 교회의 고난도 문제지만 개인적인 고난을 이해 못했던 교회를 향해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의 주제입니다. ‘사랑 안에서 자라나라, 약함으로 위로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라. 약함이 강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그들을 처음부터 성도,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겐 지금의 상황과 처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의 복과 이삭의 복과 야곱의 복으로 실현된 예수그리스도의 원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문안하라’는 신앙은 기억한 복을 입으로 시인하여 축복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로마서10:10)

하나님의 복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원복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복을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복을 기억나게 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간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 문안하라’는 신앙은 축복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평안합니다.  기뻐하는 복인 야타브, 평안한 복인 바라크, 함께하는 복인 아쉐르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의 관계 안에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연약한 ‘가시’가 서로를 공격하는 사단의 가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을 기억하고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연합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시가 피 흘림이고 이 피 흘림이 누군가를 살려내는 가시 면류관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절대 자존감, 절대 사랑, 절대 구원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이 우리와 함께 영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크, 야타브, 아쉐르 축복합니다.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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