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 > 은혜 나누기 > 누가복음 강해설교 84-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 18:1-8절, 시편 42:1-5절)
  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교회소개
코이노니아
하나공동체
교회학교
청년부
자료실
코이노니아
   · 자유게시판
   · 하나갤러리
   · 책이야기
   · 은혜나누기
   · 좋은 씨앗
  코이노니아 : 은혜 나누기

누가복음 강해설교 84-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 18:1-8절, 시편 42:1-5절)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22-12-14 09:29     조회 : 2    
트랙백 주소 : http://hanakmc.net/gnu/bbs/tb.php/grace/2670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1절부터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2절부터 8절까지의 ‘간정하는 과부의 비유’는 예수님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도시에 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생각과 입장이 절대기준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사람을 무시했다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람도 무시했다는 것은 고집불통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강적이 나타났습니다. 과부이고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여인입니다. 과부는 그를 보호할 만한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몹시도 억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인은 간절했습니다. 이번에 지면 완전히 나락에 빠져서 더 이상 기사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실하게 재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그 고집불통의 재판장이 드디어 결심합니다. 그것이 5절 말씀입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원칙입니다. 7절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다시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선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기 위해 속히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17장 22절부터 37절까지의 ‘인자의 날 하루’를 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사는 최고의 행동원칙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

기도해야 합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의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라는 말씀에 반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8절의 후반부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주제가 아니고 왜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이 주제가 될까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질문은 무슨 뜻일까요? 믿음이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없다는 것인가요?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인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도대체 있겠는가?’라는 의미입니다. 1-8절 상반절에 나오는 물음의 방향이 여기에서는 거꾸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주제가 1절이지만 결국 이 말씀을 하시고자하는 것이 진정한 주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 문제인가요?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불의하고 자기밖에 모르면서 더구나 자신을 무시하는 재판장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말씀하셨을 때,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오직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문화와 과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낄 수 있는 곳이 아무 곳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이성과 과학을 믿지 않고 신화적인 삶을 사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것은 가장 과학적인 곳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약속을 믿고 하는 기도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은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말로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재판장에게 가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는 말을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능력은 진리의 약속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신 권리가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기도는 자기 열심이고 자기 희생의 기도를 강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열심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희생입니다. 이 이 야기에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원한을 풀어준 결정적인 이유가 이 이 여인의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 과부처럼 정성을 들여 자기의 욕망을 끝까지 주님께 들이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라도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주님께 관철 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의 기도는 정성이 부족한 기도일까요?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를 하셨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실패한 기도일까요? 그러면 이 과부의 성실함은 무엇일까요? 그 본 뜻을 이해하려면 재판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었습니다.

디케의 여신이 있습니다. 정의의 여신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가지고 한손에는 칼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의 여신입니다. 법의 정신이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연상합니다. 적어도 재판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기준에 맞추어 보고 분명하게 판결해 주는 것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재판장은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준도 없고 말씀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판결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도 과부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아버지는 그 보다도 훨씬 나은 분인데 선택받은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아버지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정의와 공의와 긍휼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억울함도 없습니다. 원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봄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단일을 이루고 행복한 영생을 누리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나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 승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수여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견디고 버티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반드시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기도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게 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믿으라’고 하시면 되는데 왜 이 비유로 믿음의 기도를 말씀하셨을까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기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오늘 시편 42편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으로 하나 더 깨달음을 말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무엇인가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위임하고 위탁하는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더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시편 42편 1-5절 말씀입니다.

1절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2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3절 하나님을 찾기 위해 주야로 눈물이 내 음식이 되었습니다. 4절 이제는 아무도 성일을 지키지도 않고 기쁨과 감사가 없다는 것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5절 그래서 어찌하여 낙심할 수 있는가? 어찌하여 불안해 할 수 있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두고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이 어떤 마음일까요?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믿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오늘 1절에 있는 ‘갈급’입니다.

갈급하다는 의미의 영어가 Pants입니다. 이 의미는 ‘숨을 헐떡이다’는 뜻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 위해 숨을 헐떡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하나님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내 영혼의 갈급함


우리는 하나님을 갈급해 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다면 눈물로 음식을 삼을 정도로 마음이 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낙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내 생명의 촉각을 세워서 하나님을 찾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슴이 물을 찾기 위해 숨을 헐떡입니다. 그는 물의 냄새를 맡기 위해 코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코가 무엇인가요? 내 영혼의 갈급한 심령의 향기를 맡는 것입니다.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아가서 7장 13절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하기 위해 합환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목마름 사슴이 물의 향기를 맡기 위해 예민해지고, 그 물 향기를 맡기 위해 숨을 헐떡이듯이, 우리의 영혼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향기를 맡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탐내듯 우리의 영혼의 코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슴이 물을 찾기 위해 숨을 헐떡입니다. 그는 귀가 발달해서 작은 물소리까지도 들리게 되었습니다. 작은 물소리가 아무리 멀리서 들린다 할지라고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 영혼의 말씀을 듣는 귀입니다.

하나님은 내 작은 신음에도 반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민하고 감각적인 귀는 작은 진리라도 듣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 할 수 있습니다. 잔치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마다하지 않는 여인의 믿음입니다. 말씀의 떡을 먹을 수는 없어서 말씀의 부스러기에 만족합니다. 왜요? 살려고 그런 것입니다. 열량이 적은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그것은 우리의 배를 채우기에 충분하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슴이 물을 찾기 위해 숨을 헐떡입니다. 그는 물을 찾기 위해 눈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도 달려갑니다. 왜요? 살려고요. 엄청난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진리의 물을 마시기 위해 그는 달려갑니다. 다리가 짧은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자신의 능력 밖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물을 찾는 눈에는 진리의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보입니다.

믿음은 꿈을 꾸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봅니다. 믿음의 눈은 세상을 다르게 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기도하게 하고 낙심하지 않게 합니다. 잠시의 실망은 있어도 영원한 낙심과 절망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하나님나라를 세워 나갈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영혼의 목마름으로 헐떡이고 있습니까? 영혼의 갈급함이 있습니까? 진리를 위한 눈물을 흘려 보셨나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오늘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주님께 부르짖는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강해설교 84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1-8절, 시 42:1-5절

God bless u~

26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2 베드로전서 4:8 하나님의꿈 2023-01-29 1
2647 누가복음 강해설교 88-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누가복음 18:31-… 하나님의꿈 2023-01-21 5
2646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2023 신년주일설교(베드로전서 4장8절) 하나님의꿈 2023-01-03 9
2645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2022년 송구영신예배설교 하나님의꿈 2023-01-03 3
2644 임마누엘 - 성탄주일 설교(마태복음 1:18~25) 하나님의꿈 2022-12-28 5
2643 누가복음 강해설교 84-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 18:1… 하나님의꿈 2022-12-14 3
2642 누가복음 강해설교 83- 인자의 날 하루 (누가복음 17:22-37절, … 하나님의꿈 2022-12-04 7
2641 2022년 추수감사주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장 6-7절… 하나님의꿈 2022-11-26 9
2640 주제설교-위의 것을 찾으라(골로새서 3장 1-4절) 하나님의꿈 2022-11-11 10
2639 누가복음 강해설교79-자색 옷과 고운 베옷 (누가복음 16장 19-31… 하나님의꿈 2022-10-23 15
2638 누가복음 강해설교77-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 하나님의꿈 2022-10-09 49
2637 누가복음 강해설교76-아버지의 아들 (누가복음 15장 11-32절, 시… 하나님의꿈 2022-10-02 10
2636 누가복음 강해설교75-하나님의 사자들 (누가복음 15장 8-10절, … 하나님의꿈 2022-09-24 10
2635 2022년 추석주일예배 -첫 열매 (사도행전 10장 1-8절) 하나님의꿈 2022-09-17 11
2634 누가복음 강해설교74-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누가복음 15장… 하나님의꿈 2022-09-11 62
   1  2  3  4  5  6  7  8  9  10    
Copyright ⓒ 2002 기독교 대한감리회 하나교회. All rights reserved.
07007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 27길 78 (사당동) / 전화:02-811-0914 
온라인 헌금 : 새마을금고 9002-1916-1213-3 기독교대한감리회 하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