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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설교 88-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누가복음 18:31-34, 에스겔 24:15-24)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23-01-21 20:27     조회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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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려던 곳


주님은 큰 부자 관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을 따라서 가야할 곳은 분명했습니다. 주님이 가고자 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있는 곳, 가장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성전이 있었고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습니다. 성소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그곳 보다 더 거룩한 곳이 지성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대제사장이 있는 곳이었고 바리새인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랍비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의 정치가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말씀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사두개인들이 있었고 로마를 대신해서 정치, 경제를 통치하는 총독과 왕이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곳의 종교가들은 너무나 타락했고 세속의 정치가들은 너무나 썩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이들은 예루살렘을 혐오하고 오히려 광야로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는 다르게 살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에세네파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요한도 그렇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도 그들의 삶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는 연구들이 있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은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3대 절기 5대 제사를 드리면서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그 곳에서 경험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찾아와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회복의 땅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그 예루살렘은 타락과 죽음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힘이 있는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곳이고 잘나가는 사람들의 악의 실상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삶의 군상들을 보여주면서 서로 속이고 서로 죽이는 극악무도한 자들이 각축을 벌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에겐 이미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타락과 죽음의 공간이었습니다.

주님이 당할 세 가지 예언의 말씀


주님은 왜 그곳에 가시는 것일까요? 에세네파와 뜻을 함께 한 주님은 광야로 가시지 않고 왜 예루살렘으로 가셨을까요? 분명히 예루살렘은 타락과 죽음의 공간인데 주님은 그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님이 당할 3가지 예언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말씀하는 것이 오늘 누가복음 본문의 말씀입니다.

첫째는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한다는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방인들이 주님을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죽은 그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보면 굳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아예 보지 않고 사시면 되지, 굳이 가셔서 당하고 죽어야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말씀 안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31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길은 이미 주신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타락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었지만  그렇게 주님을 통해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그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씀이 감취었음으로’는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일부러 숨기셨다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을 그렇게 숨겼을까요?

사실 숨긴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이다’라는 선언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진 하나님이 되셨다는 뜻으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리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다가오셨다는 뜻이고 누구든지 그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친밀감과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이 들리는데 그 말의 뜻을 모릅니다. 다시 말해 말하는 자의 뜻과 의미와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어렵다고, 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을 이해하려면 말하는 자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말을 이해하는 능력, 그것을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친밀감과 이해력입니다. ‘감취어졌다’는 의미는 아직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주님의 그 말씀의 뜻과 소원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알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선하신 분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악하게 하려고 모욕과 수치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앞서서 가시고, 뒤에서 밀어주시는 분입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동행하시기도 하고 더 힘들면 업고 가시기도 하는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모든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말씀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죄에서 살리시는 말씀이고, 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영원히 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친밀감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야 숨겨진 말씀이 다 풀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죽었더라만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하면 빨리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죽을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길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숨겨진 말씀의 비밀입니다.


다시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왜 당하고 당하고 당하는 죽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룩한 곳에 더럽고 추한 것이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하는데, 예루살렘을 가장 추하고 더러운 가면을 쓴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로 산다는 것은 악한 것과의 싸움을 말합니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더럽고 추한 것들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싸워야 하고 전쟁을 해야 하는데, 그 싸움을 육신으로 생각하면 백전백패입니다. 육신으로 악한 영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반드시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마침내 죽어야 악한 영을 이길 수 있고 그 악한 영으로부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까지 가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생고생이고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일 것입니다. 믿음의 눈과 귀가 열려야 사실은 말씀을 듣고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죽음의 자리라고 할지라도 믿음의 눈과 귀가 열리면 우리는 그곳까지 주님과 함께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숨겨진 말씀의 비밀을 알기 위해 믿음의 눈과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것을 잘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록된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들을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자지와 참된 선지자의 분별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말로만 남았는지가 기준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은 선한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선한 말씀이고, 은혜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가장 슬픈 것은 영의 죽음


에스겔 24장 15절부터 24절 구약의 말씀은 더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죽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를 하나님은 ‘인자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인자’라고 스스로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 말씀도 인자의 죽음을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죽음은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에스겔이 사랑하고 기뻐했던 아내의 죽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아내의 죽음을 예언하시면서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또 ’입술을 가리지 말고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국의 성소의 파괴와 자녀들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개인의 불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주님의 죽음의 예고는 그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나의 구원자입니다. 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죽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것의 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몰랐습니다. 에스겔의 아내가 죽는 것 까지도 사람들은 그 뜻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불행과 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뿐이었습니다.

말씀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비밀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이 저주와 같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그 말씀의 비밀을 분명하게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알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은 첫 번째,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믿음입니다. 숨겨진 말씀의 비밀은 살아나리라는 믿음입니다. 여기에서 살아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비밀은 영원히 사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역설적으로 영원히 살기 위해 몸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희롱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채찍질할 것이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를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자연현상입니다. 그래야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고 죽음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저주와 죽음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람일진데 저주와 죽음을 어떻게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탄식할 수는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초상집에서 차린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의 몸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알았을 때여야 합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마지막 영의 죽음을 맞이할 때입니다.


에스겔도 가고 주님도 가신 길



두 번째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신을 신으라고 하신 이유는 장례를 치르는 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일을 위해 일하는 자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숨겨진 말씀의 비밀은 말씀이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영원히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은 일들을 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소식이 아니라 잘 살라는 일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죽음의 길이었지만 주님께는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감취어진 말씀의 비밀은 ‘하나님의 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일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누가 그 죽음 앞에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자신의 불행 앞에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입술을 가리지 말고 말씀을 들은 대로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 살면서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옳습니까? 누가 정당합니까? 자신의 불행 앞에서는 누구나 다 입을 다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비밀은 그 말씀이 살라는 말씀이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깨닫고 ‘일을 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을 사명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말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가인의 후예들인 모든 사람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 아벨의 피를 믿는 사람들의 생명을 호소해야 하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입술을 가리지 말고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듣든지 말든지 전해야 합니다. 이해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나중에 그 말씀을 이해하는 날, 그 말씀이 생명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말씀이 생명이고, 그 말씀이 남은 사명이라고 한다면, 그 말씀에 우리도 아멘의 신앙으로 몸이 따라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듣고 따라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비록 신앙은 당하고 당하고 당해서 죽음까지 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씀만이 소망이고 말씀의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깨달았다면 몸으로 움직여서 따라야 합니다.

에스겔도 그랬고 주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해도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비통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랑의 일이고 생명의 일이고 소중한 한 사람을 위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기 위해 초청하셨습니다. 근심하고 주님을 떠났더라가 아니고 주님의 그 길을 생명의 길로 알고 몸으로 움직여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강해설교 88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눅 18:31-34, 겔 24:15-24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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