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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사도의 표 (고후 12:11~13, 룻 3:6~13)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19-09-14 13:02     조회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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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사도


사도바울은 우리의 가시가 자족할 수 있게 하는 제어장치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또 그 가시를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시는 가시면류관처럼 고난이고 아픔이지만 동시에 생명의 면류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본문 말씀에서는 가시를 ‘사도의 표’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표는 표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징조일 수도 있고 증표일 수도 있습니다. 가시면류관이 승리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되기 위해서는 사도의 표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표는 지극히 크다고 하는 사도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아, 저 사람은 제대로 된 사도의 모습이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 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사도의 표로인해 자신은 그들 보다 부족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라는 단어 자체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제자는 세상에 속해 있다가 하나님의 사람 또는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의 12제자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12제자 이외에 예루살렘을 같이 순회했던 순회전도단이 70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다락방에는 120명의 제자들이 있었고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이 500명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가 12명, 70명, 120명, 500명이었던 것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배와 부친을 버려두는 것,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지치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의 습관과 가치관을 버려두고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본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그런데 제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다시 보내심을 받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는 하늘에서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12제자가 12사도로 세워지는데 배반한 가롯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사도로 세웁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 아볼로, 실루아노와 디모데도 사도입니다. 사도들은 대부분 예수를 직접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예수를 보거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리 오실 예수님을 눈으로 귀로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대사명(Great mission)을 이루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모든 참음


바울은 사도의 직분에 대해서 다시 이해를 합니다. 사도를 어떤 존재,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직분이라고 하는 사도의 기능적인 면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은사라고 하는 것을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라고 사도의 존재를 사도의 직분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는 ‘너희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라’라고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은사가 사도의 직분, 사도의 은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표는 네 가지인데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의 표에 반대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짐승의 표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세상은 짐승들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짐승의 표는 666입니다. 666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단어를 수로 표시할 수 있는데 666이라는 숫자는 네로황제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7과 12가 완전수인데 6은 하나가 못 미치는 것입니다. 사도의 표와 짐승의 표가 다릅니다. 그런데 한끝차이로 다릅니다. 짐승의 표가 666이라면 사도의 표는 777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짐승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을 상징하는데 그 정신들도 똑같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참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 말씀을 다시 해석해 보면 ‘모든 참음’으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는 것인데 참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 가장 큰 사랑은 절제입니다. 절제하는 사랑은 생명이 생명다워지게 합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참음, 당겨 믿는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히 11:1)

원래 믿음이 바라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상이고 증거입니다. 이 말은 믿음은 당겨서 믿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겨서 믿을 수 있는 힘이 인내, 참음입니다. ‘참음’이라는 말은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표적은 Sign인데 헬라어로는 세메이온이라는 말입니다. 헬라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표적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인지 아닌지를 드러내는 싸인이 중요한 것입니다. 원래 표적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능력입니다.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봐야 하는데 자꾸 손가락이 어떻게 생겼네. 손톱에 뭐가 끼었네. 라는 얘기를 합니다. 표적이 무엇인가 드러내고 가리키는 능력인데 표적과 기사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니까 진짜 중요한 진리를 못 보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게 하는 능력이 기사, Wonder입니다. 헬라어로는 테라스인데 자연의 법칙을 깬 다른 것을 보여주는 능력입니다. 모든 사람이 물 위를 걷는데 한 사람이 빠져 죽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리고 계속 그 일이 반복이 되면 자연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데 한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주셨지 기적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주시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법칙 안에서만 살다가 끝이 납니다.

그리고 능력 Power는 원어로는 두나미스인데 다이나마이트에서 온 말입니다. 능력은 뚫고 지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마리아에게 오신 성령, 그 성령이 능력, 두나미스입니다. 그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나미스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시는 능력, 죽은 것을 살리시는 능력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데 땅의 표적과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표적과 하늘의 지혜는 결국 십자가 밖에 없다,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의 표라고 하는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 이 세상 세속의 정신 안에서 다르게 살게 하는 힘입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 12:20)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2:21)’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럽고 지극히 크다고 하는 사도들은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능력이 사도의 표의 능력입니다. 모든 것을 거슬러서 새로운 존재,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생명을 증언하는 능력이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입니다.

가시가 우리에게 능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가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이 네 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음을 수 있는 힘으로 사도가 되는 것이고 가시가 능력이 됩니다. 참음, 그것이 십자가이고 예수님의 삶의 모습입니다. 표적은 예수그리스도, 기적은 죽음을 뚫고 나오신 부활의 모습, 그 능력은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능력, 영생입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참음이라고 하는 온유와 겸손의 태도입니다.


주님의 옷자락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룻 3:9)

자고 있는 보아스의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룻이 와서 간청하고 있습니다. 옷자락이라는 말은 날개의 의미가 있고 보호와 안식의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 16장 8절에 있는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나는 네가 입고 있는 옷의 모퉁이를 너로 덮고 너의 육체를 가렸다’고 말씀합니다. 가시를 생명의 면류관으로 만드는 능력이 주님의 옷자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참음’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참음 가운데 들어갔던 우리가 똑같이 누군가를 참아주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힘인데 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이었고 남편을 잃었고 너무나 가난해서 이삭을 줍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여인이었고 괴로움이라는 뜻이 있는 나오미라는 이름을 가진 시어머니를 모시던 여인이었습니다.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 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룻 3:10)

처음에 베풀었던 인애는 몰락한 집안의 시어머니에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의 인애는 보아스에게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이니이다’ 라고 했던 인애입니다. 그 인애로 말미암아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도의 표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옷자락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누군가를 품어주고 참아줄 수 있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사 6:1)

하나님의 성전 안에 길게 늘여진 옷자락이 있습니다. 그 옷자락은 우리의 죄를 참아주시는 하나님의 옷자락입니다. 그 속에는 일상의 삶을 깨서 아주 특별한 삶으로 끌고 가시는 표적이 있고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시 부활에 참여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가게 하시는 기사와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품고 참아줄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시장에서 골방으로


주님의 옷자락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품고 참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려면 사도의 표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가시를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믿음의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시장에서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곳이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들어가서 숨 쉬어야 하는 주님의 옷자락 아래에서 그들이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고 계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에도 이제는 시장의 논리가 있습니다. 믿음에도 시장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보다 나아야 하고 다른 교회와는 달라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시장의 논리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요즘 집을 보고 땅을 보러 다니면서 저를 보니까 저에게는 자본주의의 영이 부족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이루는데 그 안에 작은 자와 큰 자,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의 논리는 큰 자가 작은 자를 밟고 올라가서 내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생각이 사도바울 보다 자신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다고 하는 자부심이었습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많이 받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목사이고 적게 받으면 능력이 없는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조차도 화려하고 좋은 것을 소유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의 표에 ‘참음’이 첫 번째로 이야기 되었는데 주님의 옷자락에 들어가는 것이 ‘참음’의 시작입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만큼 참으시는지 경험해 봐야 합니다. 제가 늘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마다 번개가 내리친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둘러서 주님의 옷자락으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편히 쉬라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주님의 옷자락을 경험했던 것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골방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는 먼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주님과 나만의 만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참으셨는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기적과 표적과 능력을 보여주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장의 논리들이 판을 치고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고 천둥소리가 들려도 내가 그 안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골방에서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를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저히 참을 수 감정에 휘둘려서 붉으락푸르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의 표 5, 마침
고후 12:11~13, 룻 3:6~13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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