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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설교 5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도행전 2:1~13, 창세기 11:1~9)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24-01-07 08:51     조회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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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공동체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2장 1절부터 1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2023년 마지막 주일 설교지만 사도행전 말씀은 시작하는 시간, 모든 교회의 시작을 말씀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초대 교회가 시작하는 가장 결정적인 한 장면을 뽑는다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소화하고 새김질하면 사도행전 자체가 쉽게 이해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성령의 역사들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2장 1절에서 ‘오순절 날이 이르매’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순절은 유대교의 절기로 얘기하면 가장 먼저 수확한 수확물들을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이 유월절 절기에 죽고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있었던 다락방의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6월에 돌아가시고 성령이 오순절 절기에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유월절은 pass over, 죽음을 넘어선 날입니다. 그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허물과 죄를 덮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실패와 절망을, 상처를 씻어주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잘 하는데, 사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과 은혜로 산다는 것은 다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떨어져서 영향력이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그것을 드러내고 선포하고 또 고백하고 살 수 없는 그런 인생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놓고는 열심히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건강하기만 해다오, 라고 해놓고는 성적이 떨어지면 질책을 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의 언어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몸의 언어로 살아야지 말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말이 곧 실재고 말이 곧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된 그것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그렇게 산다고 말해 놓고는 다른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공동체입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또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모여서

사도행전 2장 4절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가 보통 이것을 방언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방언은 고향의 언어였습니다. 사투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초대교회로 가면서 하늘의 소리 또 하나님의 언어라는 의미로 바뀌었고 은사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4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내가 하나님 사랑해야지,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지, 하면서 613 가지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믿음은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결정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을 성령이 운행하실 수 있도록 위임하고 위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를 끌고 가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게 아니고 사실은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그들이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확한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감사하는 시간에 그들은 실패하고 상처받은 채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부재 가운데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스승을 떠나보낸 사람들 그리고 지치고 힘들고, 종교적으로는 바리새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정치적으로는 사두개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또 팍팍한 식민지의 삶을 살던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은 힘들고 어려우면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든가 혼자 있으려 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공동체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모입니다. 그것이 오순절 다락방 공동체였고, 지금의 교회가 바로 그런 공동체입니다.

신앙은 모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모인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너무 많고, 내 아픔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럽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다락방에 지친 마음, 상처받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성령이 하실 수 있도록 멈추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시작입니다. 멈춘다는 말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멈추고, 감정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멈추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내가 기다리겠습니다,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하겠습니다,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모여서 기다리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내 것



사도행전 2장 2절 말씀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3절 말씀에서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바람과 같은 소리 그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라고 성령의 운행하심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진리를 경험하고 그때부터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람들은 착한 일 해야지, 좋은 일 해야지, 하는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는 율법주의가 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어주고 위탁하고 위임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내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능동이 아니고 수동도 아니고 피동입니다. 하나님 앞에 되는 것, 믿어지는 것,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세 가지의 신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신앙은 기다려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기다리고 그분이 일하심에 따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안 그러면 내가 잘나서 됐다고 생각할 수 있고 동시에 망하면 죄를 묵상합니다. 모든 것 하나님이 하실 거고. 하나님이 마침표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의미의 종교는 내 열심, 내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신앙은 철저하게 개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개별적이면서 공동체성이 있습니다. 개별성이 없으면 하나하나의 색깔들을 잊어버리고 전체주의로 가게 되고. 공동체성이 없으면 개인주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각각 하나님 앞에 개별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내 것이 있습니다. 그 개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연대하고 연합할 수 있는 힘으로 공동체성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신앙은 이해와 이성을 넘어서 생명을 말하고 생명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다 이해하려고 다 설명하려고 하면할수록 스스로 자기 것으로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계속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힘을 빼라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자 천하 각국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무리가 그 소리를 듣고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다 갈릴리 사람인줄 아는데 어떻게 자신들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언어의 형식은 다 달랐지만 그 내용은 똑같이 하나님의 큰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하고 어떤 사람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은 새 술에 취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은 내 입술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내가 내 입술을 주님 앞에 드리면 주님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을 한다는 것은 내 입에 힘을 뺀다는 것입니다. 내 손과 발, 욕망의 도구로 썼던 불의의 병기를 하나님 앞에 드려서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하겠다고 하는 순간 그것이 의의 병기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힘을 주라고 얘기하는데 신앙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신앙은 욕구와 욕망조차도 주님 앞에 내어드려서 하나님이 하게 하심을 따라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의 역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23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의 성품으로 드러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성품이 복수가 아니고 단수입니다. ‘열매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가 각각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모든 열매가 한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있는데 희락이 없거나 화평하긴 한데 온유하지 않다거나 한 것이 아니고 하나가 없으면 다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고서 착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이기적이고 더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더 계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바람과 같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바람과 같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서 우리 가운데 자유가 옵니다. 이걸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해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같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살게 되면 거침없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바람과 같은 성령이 오게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함을 늘 얘기하는데 어딜 가든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과 같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불같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공의와 진리가 무엇일까? 공의를 어떻게 이룰까?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불같은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면 태우는 능력으로 죄를 사해 주셔서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비둘기 같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서 살게 되면 온유하고 겸손해집니다.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 신앙생활, 생명생활을 하려면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모여서 함께 기다리면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시고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온유와 겸손의 마음이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친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번째 기름과 같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능력과 영향력을 미치며 살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고 힘든 일을 겪어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비와 같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부유와 풍성함을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돈은 있는 사람이 반드시 나눠주는 게 아닙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지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단비와 같은 성령이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은 은혜를 나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인생 뒤돌아보며 상처와 아픔뿐이라고 원망하고 불평만 하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요하고 풍성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부유함과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릅니다.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능력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연합과 연대


착하게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얘기하고 요한복음은 성령의 본질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어떤 때는 하나님의 부유함과 풍성함에 대해서 말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대단한 사람이라거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온전히 드린 사람들에게 일어난 역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벨탑의 역사입니다. 바벨탑의 역사와 오순절의 역사는 서로 반대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땅의 사람과 하늘의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들과 자기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다릅니다. 땅을 보면서 어떻게든지 더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불같은 성령, 바람과 같은 성령, 단비와 같은 성령,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려와서 낮아지고 낮아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 삶의 다른 점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을 지을 때는 정 맞지 않은 돌만 사용합니다. 정을 맞지 않은 돌은 조작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계산되어 만들어진 돌이 아닙니다. 성전의 돌은 바람과 물에 그리고 돌과 돌끼리 부딪치면서 깎인 돌들입니다. 바람과 물과 관계 속에서 깨지는 것이 성령이 우리 가운데 하게 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탑은 벽돌로 지었습니다. 벽돌은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돌입니다. 그들이 벽돌로 가장 높은 건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신념, 생각으로 쌓아서 높은 건물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노력해서 안 되는 거 알 것입니다. 인생 수고와 슬픔밖에 없고 무너지고 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두 번째 오순절 다락방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같이 보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개별적이지만 하나가 되고 서로 연합하고 연결돼서 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약한 사람일수록 연합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독립적인 사람이 상호 의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연합과 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바벨탑은 서로 같은 언어를 썼는데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훑어서 분열되게 하고 혼란케 하셨습니다. 각각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니까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공동체의 시작


오순절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과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세 번째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도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처럼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흩어져도 그들은 힘이 빠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향력과 능력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서 성품을 드러내며 살아가니까 사랑이 시작되고 생명이 시작되고 공동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연합하고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시를 건설해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드러내려고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은 서로 적이되어 양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으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린 양만 남는 것입니다.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 로마라고 하는 제국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할지라도 그들은 없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어린 양 같은 자들이 결국에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믿음이 오늘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려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그것에 따라 어떤 때는 자유함으로 어떤 때는 하나님 앞에 능력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강해설교 5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도행전 2:1~13, 창세기 11:1~9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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