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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설교 1 데오빌로여 (사도행전 1:1~3, 출애굽기 34:1~9)
글쓴이 : 하나님의꿈     날짜 : 23-12-03 08:55     조회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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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도행전의 말씀이 시작되는데 제가 2011년부터 사도행전 강해 설교를 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전에 전했던 말씀을 보니까, 그때는 그때 전한 말씀이 맞고 지금은 또 다른 말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지나고 나니까 말씀이 또 다르게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우리 공동체도 주님 안에서 함께 자라나는 생명이기 때문에 보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충북의 대소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마을 입구에 어마어마하게 큰 다리가 하나 있었고, 다리 밑에 개울이 흘러서 그곳에서 수영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40이 다 돼서 그곳에 다시 가봤더니, 차 한 대밖에 못 지나가는 정말 작은 다리였습니다. 그리고 개울도 너무 작은 도랑이었습니다. 그 장소는 변함이 없는데 제가 자라서 본 모습이 다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2011년부터 봤던 말씀하고 2023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분명 다를 것이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말씀들이 새롭게 보이는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사도행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누가복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가 누가복음을 쓰고 나서 또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1장 1절에 보면 데오빌로여, 라고 시작합니다. 누가복음도 이 이름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은 큰 틀에서 세 가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를 인정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명이 있으셔서 이 땅에 오셨고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 가운데 들어가셨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까지의 시간이 40일이었습니다. 3절에 있는 말씀에 보면,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기 바로 직전까지 40일 동안 말씀으로 계속 그들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이고 예수를 인정하는 삶이 무엇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1장 1절부터 3절에서 얘기한 누가복음 전체내용을 넘어서 이제는 예수를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그래서 예수와 단일을 이루는 그런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몸에 난 고난의 흔적을, 예수의 흔적을 본 사람들에게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기며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길


우리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니까 이제는 우리도 생명을 낳는 삶으로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 삶에서 이제는 예수로 사는 삶의 역사를 사도행전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누가복음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을 길의 복음이라고 얘기합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모든 여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사도행전도 길의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로 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라고 하는 말씀대로 지금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말씀이 사도행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했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예루살렘에서 이제 로마로 가는, 다시 말해서 너무나 작은 이름조차 잘 모르는 나사렛 또 사람들은 다혈질이고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진리가 로마까지 가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미의 어떤 곳에서 시작하는 하나의 조그마한 변화가 나중에는 태평양을 넘어서 큰 태풍이 된다, 이런 가설이 나비효과입니다.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세상은커녕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거꾸로 내가 가지고 있는 삶 하나하나가 나중에 큰 나비효과를 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이거 해 봤자, 가 아니라 내가 그때그때 작은 것이지만 믿음을 사용하고 또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영향력이 되고, 그것이 능력이 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땅을 딛고 하늘을 본다는 것은 철저하게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밥을 먹어도 하나님 나라 위해서 먹고, TV를 봐도 그냥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에만 있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 우리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겠다고 결정하면 하나님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되게 하시고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누룩이 퍼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덮을 만한 복음의 역사
두 번째,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누가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시는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합니다. 보이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연약해서 쓰러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보이는 하나님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역사가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또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신이든 물질이든 어떤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썩고 쇠하고 없어지는 물질, 썩고 쇠하고 없어지는 시간이지만 그것을 영원한 시간과 영원한 물질로 삼고 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믿음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고 하는데 말씀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통해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는데 물질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쓸 것인지 말 것인지 내 육신이, 썩고 쇠하고 없어질 것이지만 온전하고 완전한 영원한 하나님의 부활의 몸으로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오늘 사도행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오늘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육적인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이스라엘로 변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끊임없이 육적인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면서 수많은 이방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을 보낼 때도 예루살렘을 넘어서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시고, 또 예수님의 관심은 늘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말씀을 따라 살 것인가? 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희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은 그것을 넘어서 있습니다. 민족을 넘어서 문화를 넘어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차별을 넘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리라, 고 하는 모든 것을 덮을 만한 복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 사람입니다. 이 개념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정체성을 두면 우리는 배타주의가 되고 민족주의자가 됩니다. 민족을 넘어서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민족의 경험도 넘어서서 하나님의 나라 영적인 이스라엘을 구하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방을 품어야 되고 민족을 품어야 되고 선호를 넘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은퇴하고 나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 가서 10년을 살겠다고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도대체 나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데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서 그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신앙이 아니고 사도행전의 신앙입니다.


관계의 변화


생명은 자라나야 합니다. 생명은 늘 변화무쌍하게 하나님 안에서 온전과 완전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게 아니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자라나야 하고 오늘보다 내일 좀 더 자라나야 합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좀 읽으시기 바랍니다. 50이 넘으면 눈도 침침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자조 섞인 말 중에 50 넘은 사람은 절대로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우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까지 자라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에 가지고 있던 믿음보다 오늘 더 자라나야 하고 하나님 앞에 늘 자라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귀가 열려야 합니다. 자꾸 기가 막히는 삶을 살지 말고 귀가 뚫려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제가 요즘 친구들 만나서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니까 다 40년 전에 얘기를 합니다. 옛날 얘기 들으니까 좋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오늘 내가 조금이라도 자라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이해 안 됐던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되고 또 이해뿐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구나, 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제목이 데오빌로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누가가 데오빌로각하라고 했는데 사도행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그냥 데오빌로라고 합니다. 각하는 굉장히 높은 지위입니다. 아무나 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총독이나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각하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1장1절에서는 데오빌로여, 라고 합니다. 각하에서 데오빌로가 됐습니다. 누가가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다 전하고 나니까 생명 관계가 된 것입니다. 각하에서 그냥 친구가 되었습니다. 데오빌로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과 전에는 공식적인 의례적이고 예의적인 관계를 했는데 이제는 데오빌로여,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과도 가까워지게 합니다. 그래야 성품이 바뀝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하고도 가까워집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느 정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너무 가까운 게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주님 안에서 변화된다는 것은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공식적인 관계로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만났다면 이제는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들고 뛰는 동역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더 친밀해져서 우리가 영적 전쟁터에 나갔을 때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어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을 교회 공동체 생명관계 안에서 위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다 욕해도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그냥 다 이해가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도 분명히 조직이라서 서로 간에 불편한 것들이 있고 또 예의도 있어야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형제고 한 자매고 또 한 지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깊고 더 온전한 친구의 관계


사행행전에서는 데오빌로 각하에서 데오빌로라고 부를 정도로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생명관계가 된 것입니다. 생명관계는 세 가지를 나누는 관계입니다. 첫 번째는 피를 나눕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의 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물질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절대로 돈놀이 하지 말고 돈 꿔주고 받는 거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은행에서도 돈 꾸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관계 안에서 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오자마자 돈이 필요해서 제일 먼저 은행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은행 거래를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까 신용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은행에서 너무 의아해하면서 담보가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오셨느냐고 했습니다. 담보도 없는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돈의 관계를 할 때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빌려줄 때는 안 받아도 돼, 라고 할 정도의 돈을 빌려줘야 합니다. 자꾸 계산이 되면 빌려주지 말아야 합니다. 또 돈을 빌리는 사람은 죽기 살기로 갚아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빌려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해 봤습니다. 전에 교회 청년 중에 한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즉시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내가 저에게 돈을 맡겼는데 그 때 뺏겼습니다. 전화했는데 전화도 안 받아서 사실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다행히 그 돈 없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빌려줬기 때문에 충격이 적었습니다. 지금 하는 이 설교를 들은 청년인데 그 청년이 2년 뒤부터 조금씩 송금을 하더니 결국 다 갚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서로 돈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관계입니다. 피를 나눴다는 말은 물질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그런 역사입니다.

세 번째, 생명관계는 시간을 나누고 있어야 합니다.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부부가 결혼을 하고서 하나는 서울에 살고 하나는 부산에 살면서 우리는 결혼했어, 라고 말한다면 이게 맞는 말인가요? 결혼했으면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있는 것이 위로고 격려고 용기를 주는 것이고 또 그것이 그냥 나에게 생명일 수 있습니다. 함께 있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그것이 생명관계입니다.

서로 이 관계로 나아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고슴도치 사랑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고슴도치가 가시가 있어서 가까이하면 가까이 할수록 서로 찌릅니다. 그렇다고 추우니까 또 완전히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시의 길이만큼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피 흘리시면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물론 조금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 안에서 더 깊이 더 온전한 관계를 추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도행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이듯이 서로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유OO권사님, 임OO장로님이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시지만 친구입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 백 년, 천 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68년생이냐 67년생이냐 서로 그거 가지고 싸우고 1년 학교 일찍 다녔다, 동사무소가 불타서 출생신고가 잘못 됐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든지 이겨먹으라고 하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서로 친구가 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데오빌로가 각하의 자리에서 내려와 옆에 있는 사람과 진정한 친구가 됐습니다. 이제는 듣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내가 다듬어 만든 돌판



데오빌로의 변화는 이제 각하라고 하는 이름을 버리고 친구가 됐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 행하는 삶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데오빌로의 신앙, 하나님의 친구의 신앙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아버지 신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너무나 높은 창조주이며 우리는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이라는 관계인데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가르쳐 준 신앙이 그 분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죽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또 가르쳐준 것이 그 분이 우리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개념이 너무 커지다 보면 여호와 증인들은 여호와라는 신이 더 크고 여호와가 만든 신이 예수라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의 고백은 성부, 성자, 성령이 다르지만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친구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신앙에서 시작해서 친구의 관계까지 가야 합니다. 나중에 이 관계가 부부의 관계까지 갑니다.

오늘 말씀은 친구의 신앙을 가지고 살라고 하시는데 출애굽기 34장에서 친구의 사랑, 친구의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34장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판에 있던 말을 내가 판에 쓰리니’ 두 돌판을 하나님이 다 깎으시고 거기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돌판에 하나님이 십계명을 쓰고 모세가 가지고 내려왔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고 모세가 분노해서 돌판을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만들어 주지 않으시고 ‘너는 돌판 둘을 처음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첫 번째 돌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가 상징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첫 번째 돌판이 깨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다시 세워야 되는데 이번에는 모세 스스로 다듬어서 돌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까지 복음서의 말씀은 전부 받는 은혜, 선물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부터는 받은 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판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그곳에 써 주십니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는 선물의 믿음이었다면 이제는 말씀을 쫓아가는 믿음과 상금을 쫓아가는 믿음, 내가 부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입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다듬어서 만든 돌판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 눈물과 내 피와 내 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늘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드리는 믿음입니다.


친구의 신앙


내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나님이 말씀을 쓰실 수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말고 내 믿음을 사용해야 하는데 믿음을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서 하기 때문에 내가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조금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밑에서 살다가 자라는 것처럼 어느 순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또 만 번이든 이만 번이든 연습하고 연습해서 자기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은혜입니다. 수없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믿음을 사용해 봐야 합니다. 조금 못하고 좀 어설프고 전문가 같지 않고 조금 서툴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사용해야지 그 믿음이 내 것이 됩니다.

내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내 믿음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는 이미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은혜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사는 것은 내가 믿음을 사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설령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34장 9절에서 ‘주여 내가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내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위에 계시는 게 아니라 내 몸으로 들어오셔서 영원히 나와 동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쓰러져도 은혜입니다. 실패해도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에 대한 실패입니다. 사랑하는 것에 내가 좀 좌절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최종적인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고 우리와 동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친구의 신앙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 제자에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모이는 것은 제자이고 흩어지는 것은 사도입니다. 사도는 메신저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나를 보내신 것은, 일터에 나를 불러주신 것은, 내가 꿈을 꾸게 하신 것은 사도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의 신발이 닳지 않았고 옷도 해지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업고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면 이제는 흩어져야 합니다. 흩어져 간 곳이 하나님의 사명의 자리입니다.

두 번째 데오빌로가 교회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에서 데오빌로가 되었고 데오빌로가 모여 공동체가 됐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로마 교회가 생명 관계를 통해 세워졌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데오빌로가 모여서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죽음을 향해 갔던 삶이 누가복음의 삶이었다면 사도행전의 친구의 신앙은 영원한 생명을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언제 죽을까? 생각하거나 몸이 연약하고 아파서 죽지 못해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강해설교 1
데오빌로여
사도행전 1:1~3, 출애굽기 34:1~9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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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5 사도행전 강해설교 7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사도행전 2:37~… 하나님의꿈 2024-05-06 11
2694 사도행전 강해설교 6 생명의 길(사도행전 2:14~36, 시편 16:9~11… 하나님의꿈 2024-05-06 10
2693 사도행전 강해설교 5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사도행전 2:1~1… 하나님의꿈 2024-05-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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